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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레들리의 일기

#1
레들리는 숲에서 눈을 떴다. 찬란하고 거대한 수정이 부유하는 기묘한 공간과 레들리에게 일러주는 어느 목소리, 빛과 어둠, 그리고 어느 암시. 그 모든 것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달그락거리는 마차 안이었다. 상인이 말을 걸고 있었다. 왜 무엇을 위해 모험을 하냐고 물었다. 레들리는 모험이 뭔지 잘 몰랐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그냥 어느순간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었다. 상인은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레들리는 마차 밖을 내다보았다. 숲이었다. 거대한 나무가 치솟아있었고 파란 잎들이 흔들렸으며 햇빛이 반짝반짝 조각나서 스며드는 숲. 레들리는 숲이 좋았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왜 마차에 있는지, 그전에는 뭘 하고 있었는지,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마차는 그리다니아로 향했다. 레들리는 그저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라도, 괜찮을것 같았다.

#2
아, 사람. 사람들....... 그리다니아는 거대한 마을이었다. 레들리는 도시라는 표현을 몰라서 그리 불렀다. 약간 번잡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레들리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많으면 많을 수록 더욱 두려웠다. 레들리는 습관적으로 목 언저리를 움켜쥐었고 끌어당겼다. 후드로 뾰족하고 긴 귀를 가려야했다. 그런데 없었다. 항상 입던 후드달린 녹색 숄이 없었다. 심장이 섬짓해졌다. 황급히 옷을 더듬어보았는데 후드에 달렸던 황금 이파리 브로치만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 어째서 후드가 없다는걸 눈치채지 못 했지? 숨이 막혔다. 저기 사람들이 있었고 누군가가 다가왔다. 세걸음, 두걸음, 한걸음, 바로 앞. 레들리는 귀를 감싸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자는 레들리에게 모험가냐고 물으면서 평이하게 말을 걸었다. 모험가면 어디에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레들리가 독특할것 하나 없다는 사무적인 말투였다. 레들리는 간신히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아주 키가 큰 이었다. 그리고..... 귀가 뾰족했다. 아...... 정신이 멍해져서 다음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사람은 돌아섰고, 또 다른 이를 상대했다. 레들리는 홀린듯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거대한 수정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있었다. 꿈에서 보았던 것 같은, 그러나 그에 훨씬 미치지 못 하는 크기의 것이었다. 아주 키가 큰 사람과, 아주 작은 사람, 우락부락한 사람과 호리호리한 사람들이 뒤섞여 한데 모여 떠들고 있었다. 누군가의 귀는 둥글었고 누군가의 귀는 뾰족했다. 레들리의 것과 같았다. 그 사이에서라면 레들리는 이상할 것 하나 없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 간신히 벤치에 앉을 수 있었다. 눈물이 떨어졌고 레들리는 히끅거렸다. 사람들이 말을 걸까봐 두손으로 얼굴을 덮었고 고개를 숙였다. 녹색 단발의 머리카락이 쏟아지며 얼굴을 가져주는 걸 알았다. 일부는 긴 귀에 걸리며 내려오지 않는것도 알았다. 그게 이곳에서는 이상하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레들리는 흐느꼈다.

#3
레들리는 물에 자신을 비춰보았다. 위화감이 들었다. 이게 나인가? 녹색머리 단발에 녹색의 순해보이는 눈. 레들리가 알던대로였다. 그러나 뭔가가 미묘하게 달랐다. 키도 마찬가지였다. 레들리는 원래 작은 편이었으나 이렇게까지 작지는 않았다. 원래? 원래 어땠더라? 레들리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떠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방금 물에 비친 모습만 그려졌다. 레들리는 포기하고 다시 물을 보았다. 아까는 보지 못 했던것이 보였다. 어째서 눈치채지 못 했을지 싶은 선명하게 붉은 나비의 문양이 오른쪽 뺨을 덮고 있었다. 낯설었다. 이건 자신에게 분명히 없었다. 볼 수록 홀려들것 같은 문양이었다. 나비. 어째서 나비인 걸까? 기분이 이상해져서 레들리는 그쪽 뺨을 손으로 덮었다. 이게 본래의 자신 같았다. 손으로 부비벼 보았으나 그런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레들리는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저녁이 오고 사방이 어두워져서 물속의 자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제서야 시선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어두워져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무서웠지만 참고 지나갈 수 있었다.  레들리는 걷기 시작했다. ......아까 그 사람이 어디로 가보라고 했더라?


2018.12.0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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