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드렸던 멘마 연성 가져왔습니다! 많이 늦었네요.
2019.08.18 공개 전환으로 새로운 독자분들에게 드리는 공지.
>>>>이건 정말 각잡고 비참 보고 싶어요! 에서 시작해서 쓴 글입니다. <<<<
비참에서 연상될 수 있는 많은 소재가 담겨있습니다. 정신에 좋지 않고 심신에 좋지 않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전 분명 경고 했어요. 경고 했다고요.
배경 상황에 대한 설명이 미흡합니다. (아마) 궁금하신 점은 제게 물어주시거나 댓글로 달아주시면 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글 접은건 앤오님에게 한 아무말이니까 좀 무시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외에 있는 여러 아무말도요....
*이 글은 애로라가 발표되기 전에 구상한 글입니다. 애로라의 공식과는 벗어나는 설정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또 리로라의 스토리와도 일부 차이가 있습니다. IF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은 비참할 여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행복하실때는 잠시 접어두시고 보금님이 비참해지고 싶으실 때 읽어주세요. 부디, 제발, 꼭 비참해지고 싶을 때에 읽어주세요. 근데 그냥 궁금해서 그전에 읽어버릴거죠? 다 알아요.
배경에 깔아두시면 좋습니다. 근데 길이가 안 맞네요. 음......
1
엔리카는 비틀거리다가 넘어지며 풀밭을 턱 짚었다. 온몸이 덜덜 떨리는 상태여서 진정하고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심장 박동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몸이 떨리는 것은 한계치까지 달렸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고가 불가능할 정도의 극심한 공포에서 헤어 나오질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자들이 그렇게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광경이 잔혹했다면, 자신 또한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었다면.
엔리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흡이 조금이나마 진정되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길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무너져가는 폐가들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었다. 불이라도 났었는지 부분부분 새카만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마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을이었던 곳이다. 이미 마을로써의 생명은 다했지만 마을 귀환 주문서에는 마을이라고 설정되어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엔리카가 주문서를 사용했을 때 이곳으로 이동된 것이었을 것이다.
버려진 마을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는 없더라도 당장 위협을 받을 것은 없을 것이다...... 전시에는 자연히 사고가 그렇게 돌아갔다. 엔리카는 씁쓸하게 그 폐허를 길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뜩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무너져가는 건물들은 반쯤 내려앉은 신전을 닮았다. 마을은 탄 흔적으로 가득차서 새까맣다. 그것은 검은 너울을 닮았다. 검은 재들이 스물 스물 움직이며 파도처럼 사방을 향해 번진다, 엔리카에게도 다가온다, 발치에 휘감긴다.......
......그것이 충격에 의한 일시적인 환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그녀는 숨을 쉴 수 있었다. 엔리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손으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눈물이 손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2
연구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궁극의 빛이 아니었다. 불길하게 검고 괴기하게 움직이는 무언가 였다. 그것을 마주한 이들은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자연히 그것을 어둠이라 불렀다-은 천천히 꿈틀거리다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일제히 퍼져나갔다. 닿는 모든 것을 휘감았고 말려든 생명체들은 쓰려졌고 이내 죽었다. 신전이 집어삼켜지는 건 순식간이었고 근방의 숲도 점령당했다. 생존자들은 그저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엔리카 또한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그러나 그것이 쫓아오는 속도는 웬만한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빨랐다. 곧 뒤따라 잡혔고 발목에 엉켜 붙었다. 어둠은 크게 부풀어오르며 엔리카를 감싸 올라왔다. 그 순간 그녀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을 귀환 주문서를 찢지 않았더라면 확실히 죽었을 것이다.
엔리카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레이피스.”
그가 보이지 않았다. 달릴 때만해도 같이 있었다. 그녀가 어둠을 발견하고 정체를 고민하며 잠시 멈추었을 때 도망치라고 외친 건 그였다. 일원들이 제각각의 방향들로 흩어졌을 때 그는 엔리카와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그것이 지척에 이르렀다고 재촉하고 죽을 위기에 닥쳤을 때 마을 귀환 주문서를 찢으라고 다급하게 일러준 것도 그였다.
“레이피스? 어디 있어요? 레이피스!”
엔리카는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며 외쳤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선명하고 푸른 머리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부드러운 그만의 음성으로 답하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엔리카는 새하얘지는 머리로 간신히 생각을 진행시켰다.
그가 어둠에 붙잡혔던가? 아니,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어.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가 어둠으로부터 무사하다고 장담할 수 있어? 아니..... 그저 낙오된 것일 수도 있어. 마을 귀환 주문서는 한 번에 몇 명까지 이동시킬 수 있었지? 그 전에 그렇다면 그는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내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서 수많은 의문들만 끝없이 만들어내고 제대로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엔리카는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짓누르며 차분히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유령’은 물리적인 제약을 크게 받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많은 설화들이 그렇게 유령을 묘사했고 엔리카가 목격한 유령들도 그랬다. 설화는 수많은 검증이 필요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기댈 것이 이것 밖에 없다. 어둠은 분명히 물리적 영향력으로 주변을 망가뜨렸다. 그 물리적인 힘에 의해 그가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확실하던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다. 그리고 유령이 공간적 제약이 없는 것이 맞던가? 맞다면 그는 여기에 찾아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화에는 지박령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엔리카가 목격한 이들은 신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던 엔리카는 사소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유령을 보고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신전에서의 일이 유일했다는 것. 너무 자연스러웠기에 잊었다. 레이피스는 그녀가 본 최초의 유령이자 그 외의 장소에서는 한번도 가능한 적이 없었다. 아주 한정된 공간에서 허락되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기적이었다.
이곳에 레이피스가 있다 한들 내가 그를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혹시, 혹시 거기에 있나요, 레이피스?”
엔리카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어보았다. 서늘한 저녁의 공기만 스칠 뿐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무너져가는 마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엔리카는 바람을 맞으며 막연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지만 본래 텅 비었던 풍경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4
간신히 평온을 되찾은 줄 알았던 세계는 다시 빠르게 기울어져갔다. 몬스터는 더욱 흉폭해졌고 피란행렬은 풀어놓았던 살림살이를 챙겨들고 간신히 마련한 터전을 버리고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엔리카 또한 그 행렬에 합류했다. 혼자 다니기에는 세상이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엔리카는 피난민들에게 그녀의 마법을 빌려주었다. 마법사인 그녀는 환영받았다. 그들에게 마법사 아가씨라고 불렸다. 엔리카는 그들에게 생필품을 빌렸다. 도망치면서 수중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계속 걸어 나갔다. 멀리, 어둠이 뻗어오는 곳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몬스터가 날뛰지 않는 곳으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 어딘가로......
5
밤이면, 보통은 하루 종일 걷다가 피곤해서 일찍 골아 떨어지고 했지만 그래도 어느 특별한 밤이면, 피난민들은 둥글게 모여 커다란 모닥불을 지펴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작은 해안 마을에서 왔어요. 저어기 동남쪽, 하루 종일 조용한 동네였지요. 하도 변방에 있어서 그 검은 마법사 때문에 난리가 났을 때도 거기는 멀쩡했고요. 근데 지난번에는 서쪽에서 뭐 시커먼 것이 물밀 듯이 밀려와서 마을을 집어 삼키려 드는 거에요. 어선에 온 마을 사람들이 옮겨 타고 마을을 떴지요. 평생 살아온 곳인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네.”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모닥불의 붉은 빛이 일렁거렸다. 불길을 쬐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모두 어딘가 아련한 구석이 있었다. 바닷가 마을에서 왔다는 나이든 여인은 모닥불을 나뭇가지로 헤집어가며 가만가만 말을 이어나갔다.
“좋은 곳이었어요. 봄이면 물고기들이 때를 지어 거기 앞바다를 지나가는데 그때 나간 배들은 항상 만선이 되어서 돌아왔죠, 그러면 축제가 벌어졌어요.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배들을 마중 나갔거든요? 그럼 먼저 도착한 배에서 가장 크고 튼튼한 놈을 골라서 축제에 대미로 장식하는데.....”
어느 밤이면 피난민들은 저마다 자신이 떠나온 곳의 이야기를 풀어놓곤 했다. 날씨가 어떠했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들이 떠나온 고향에서는 누가 있었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찬란하고 아름다운 추억들이 풀려나왔다.
범람하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엔리카는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무릎을 세워 앉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듯 없는 듯 한구석에서 가만가만 듣기만 했다.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서 모난 생각이 튀어나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엔리카는 그들의 이야기가 미화되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지금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힘드니까 그들이 겪었던 과거가 너무나 따스해 보일 것이다.
추억이 그들을 위로해주는 모양이었다. 엔리카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과거의 기억에 대해서 떠올려보았다.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것들이 많지만 전에 숲속에서 홀로 살 때 그것들이 얼마나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는지 기억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나날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안다.
“......꼬맹이들이 그날 하루만을 손꼽아 기다리지요. 그 날만큼은 밤새도록 마을을 누벼도 아무도 제재하지 않으니까. 어른들은......”
이야기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저들이 말하는 축제 인파의 반은 죽거나 영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말하는 마을은 이미 반파되었다고 했는데. 돌아갈 수 없이 훼손된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엔리카는 암울한 표정으로 늙은 여인을, 피난민들을 얼핏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에는 이야기들의 음색이 너무 따뜻했다. 문득 모닥불이 눈이 아릴정도로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리카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피난민들은 꾸역꾸역 모여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훌쩍거리는 이는 있어도 그만하라고 윽박지르는 이는 없었다. 다들 이야기가 들리는 어느 구석에 앉아있었다. 엔리카 또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6
“레이피스.”
엔리카는 그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보았다. 모두가 자는데 혼자만 깨어서, 누군가가 또 깰까봐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서 속삭이듯이 부른 이름이었다.
유령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 이후로 엔리카는 종종 죽은 자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대상은 매번 달랐다. 엔리카는 떠나보낸 자들이 많았으니. 어머니, 아버지, 오빠, 친구들, 선생님들, 생태연구 단원들, 신전에 모였던 이들. 그러나 점차 말을 거는 이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우선 그 모든 이들이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보다 더 소중한 이들에게로 갔을 것이다. 그러니 없을 만한 이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을 건 후의 공백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것은 답해줄 사람이 엔리카가 사는 세상에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엔리카는 유독 각별한 이들을 골랐다. 말을 꺼내더라도 그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피어오르는 감정이 그 뒤의 침묵을 지워 버릴 수 있을 만큼 그녀에게 의미 깊은 이들.
“레이피스, 듣고 있나요?”
그의 이름을 내뱉자 그와 관련된 것이 떠올랐다. 나무들이 높게 자라 하늘을 가린 숲, 처음 그 숲속으로 향할 때 동행했었지.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미소짓는 당신의 모습은 아름다웠는데.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었지. 당신도 생태학자였고 나도 생태학자였고, 나는 홀로 긴 시간을 보냈고 당신도 혼자서 긴 시간 동안 지냈다고 했고. 그래서였을까? 당신은 내게 말을 걸어 달라 했었지.
하지만 당신이 정말 듣기는 하는 걸까.
엔리카는 이제 모포에서 몸을 일으켰다. 목이 메었다. 말을 꺼낸다면 울음기가 섞여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당신을 부르고 싶어졌다. 만약 크게 외친다면 당신에게도 닿을까? 그러나 곤히 누워 잠든 주변 사람들 때문에 말이 턱턱 막혔다. 불침번을 서던 사람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엔리카는 다시 누워서 자는 체 했다. 입을 틀어막고 여러 말들을 울음과 함께 꾸역꾸역 삼키며.
7
오빠, 내게 증명해달라고 했는데 난 증명하지 못했어.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 파국을 불러왔지. 세상은 종말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어. 나와 오빠가 소중히 여겼던 모든 철학과 지식과 문화들이 사그라들었고...... 미안해, 오빠. 미안해. 오빠의 유언은 지키질 못했어.
8
모닥불은 일렁거리고 연기는 피어올라 밤하늘로 흩어지고 달은 가라 앉아가는 어느 밤이었다. 그날도 피난민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엔리카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여전히 암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그곳에 존재하며.
“마법사 아가씨도 말 좀 해봐.”
실없고 방정맞은 사내가 어느 날 불쑥 그렇게 말을 꺼내었다. 엔리카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반사적으로 주춤하며 몸을 뒤로 뺐다.
“맞아요, 마법사님. 마법사님은 어떻게 살아왔어요?”
철없는 꼬마가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마법사를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여기고 동경하던 아이였다. 그들에게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은 엔리카를 당혹스럽게 했고 혼란스럽게 했다. 조금 더 과거였다면, 쾌활하고 자신감 있었을 적의 엔리카였다면 그 질문을 유연하게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단호하게 거절할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엔리카는 그러질 못 했다.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질 못했고 사방을 둘러보며 몸을 움츠렸다.
“그만하지 못 하겠나?”
어느 노인이 엄중히 외쳤다. 엔리카를 바라보던 시선들이 그 노인에게로 돌아갔다.
“말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걸 알아야지. 이 전시에 무슨 일을 겪었을 줄을 알고 자네들이 그리 함부로 물어본단 말인가?”
노인의 말에 사람들이 숙연해졌다. 피난민들 사이에서는 마냥 낮선 일이 아니었다. 자신을 지목하지 않았음에도 울 것 같음 표정이 되어 말이 없어진 이들이 있었다. 엔리카를 재촉하던 이들이 사과를 건넸다. 엔리카는 눈을 질끈 감았고 벌떡 일어나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무도 엔리카를 붙잡지 않았다.
엔리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도. 나는 이 전에 누군가에게 고용되어서 연구를 했어요. 세상을 좋게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실패했어요. 세상이 다시 이렇게 된 것은 우리 때문이에요. 우리가 그랬어요. 그 자리에 내가 있었어요. 나 때문이에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엔리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엔리카는 곧잘 입을 다물었고 피난민들에게 그녀는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9
엔리카는 다시 그녀가 살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엔리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이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숨 막히는 고요가 감도는 곳으로.
처음에는 그들과 영영 동행하기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위험하고 불안에 떨겠지만 그래도 걷고 말하고 사람들과 마주한다. 우울에 잠겨 점차 죽어가느니 그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생각을 포기했다.
이제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괴로워졌기 때문이다.
분명 전에는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 마다 불쑥불쑥 떠오르곤 한다. 내가 그랬다는 것, 이 사람들을 위험에 몰아넣는데 내가 일조했다는 것. 어둠에 아들을 잃었다는 어머니 앞에서 태연하게 웃어 보이며 일을 돕는 것은 그녀의 영혼을 갉아내는 일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마음을 굳게 잡아도 난리 통에 헤어진 아빠를 찾는 어떤 아이의 잠꼬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엔리카는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느꼈다. 상처에 닿는 아주 사소한 자극을 견딜 수 없듯이, 원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옛날 아이들의 비야냥거림을 견딜 수 없듯이, 홀로 숲속에 있을 때 사소한 추억 같은 것을 견딜 수 없듯이. 그리고 지금, 사람들의 온기와 눈물, 슬픔을 지독하게도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의 고통을 자초한 것에 자신이 관여되어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떠올랐다. 죄책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닐 것이다. 그것뿐이라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병들었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예전과 똑같았다.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그녀는 도피하는 것이었다. 더 나은 것도 없었지만 크게 더 나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녀를 괴롭힐 추억과 죄책감이 조금 추가 되었을 뿐이다. 안전한 곳에 숨어 하루하루를 견디어 갈 것이다.
헤헤헤, 이야기가 어중간하게 끊겼죠? 뒤에 더 있어요. 근데 잠시 끊었어요. 이러면 흐름이 끊어길것 같은데 사실 그러라고 그랬습니다.(보금님:?)
음, 보금님이 너무 비참해 하실까봐 그랬습니다. 휼륭한 소설가는 글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저는 제가 그럴만큼 글쓰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여기서 잠깐 스탑. 그 왜 뮤지컬 보면 1막 끝나고 잠시 쉬고 그렇잖아요. 그런거라고 생각해주세요. 기지개도 한번 펴고 글 읽느라 지루하셨으면 게임이라도 돌리고 오세요. 메이플이 더 지루한가? 아무튼.
그래도 다음 글을 읽기는 읽으셔야 하니까, 다음 글을 알려드릴게요. 이 블로그에는 딱 포스트가 두개있죠? 블로그 제목대로 방치해서 그렇습니다. 이 로그 드릴려고 잠시 부활시켰어요. 이 글말고 또 다른 하나의 포스트가 다음 글입니다. 근데 비번이 걸려있어요. 이게 다 보금님의 휴식을 위해서 입니다. 이 글 끝까지 읽으면 비번 알려드릴게요 :D
음, 이 글을 쓰면서 이렇게 까지 멘마로 써도 되나 한참을 고민했거든요. 보금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좀 걱정되어서요. 원래 이렇게 까지 멘마는 아니었는데 쓰다보면 불어나는 습관이 있습니데, 헤헷.
아, 시간 충분히 끌은 것 간네요. 이제 비번 알려드릴게요. 이 문장 밑을 스크롤하면 나올거에요.
비번은 1234입니다! 보금님을 놀리려고 하는 건 아니고 제가 창의력이 없어요.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비참 주의하시고 지금 비참해지고 싶은게 맞는지 그냥 뒷 글을 읽고 싶은건지 충분히 생각해보고 넘어가세요.
그럼 전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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