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표 끝까지 하신 것 수고하셨습니다!!!
분량은 조금 더 추가하고 싶은데요. 일단은 미리 드리고요.
“이리와 봐요, 레이피스.”
엔리카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끌어당겼다. 그간 예의로 짓는 미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머뭇거림도 계산도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미소였다. 레이피스가 그 미소에 힘이 풀린 동안 엔리카는 레이피스를 손쉽게 잡아당겼다.
“이쪽으로요.”
엔리카는 외곽으로 걸어 들어갔다. 도시의 폐허가 점점 조각으로 작아지다가 온전히 숲이 되었다. 덤불이 풍성하게 자라있었고 초록색 기운이 세상에 가득했다. 사락거리며 풀을 헤치는 소리가 둘을 가득 채웠다. 제대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가요.”
“비밀이에요.”
엔리카의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고 그에 레이피스도 웃으며 답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가길 원하는 곳을 내가 어떻게 거부할까요.”
“이런, 레이피스. 누가 들으며 내가 무슨 사지로 데려가려는 줄 알겠어요.”
레이피스는 과거의 제 행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엔리카의 웃음과 걸음은 활기찼고 레이피스의 어두운 표정도 말끔하게 씻겨나갔다.
드문드문 가지 사이로 떨어지는 빛, 새들의 한적한 지저귐, 그리고 잘 따라오는지 눈짓을 보내고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끄는 엔리카. 조용하였으나 폐허나 벙커의 적막과는 느낌이 달랐다. 엔리카는 바스락거리며 더 비집고 들어갔고, 마침내 멈춰섰다.
“여기에요!”
알리는 엔리카의 음성에는 신이 가득했다. 레이피스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처음에 보인 것은 나무와 덩굴뿐이었고, 특별한 것은 없어 보었다. 그러나 덩굴이 무언가를 뒤덮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차렸다.
“보고, 스캔 결과...... ”
“포드. 쉿. 그런건 미리 말하면 재미없잖아.”
포드의 응답을 엔리카가 빠르게 낚아챘다. 레이피스의 포도이지 엔리카의 포드가 아니었던 그것은 레이피스 쪽으로 몸을 돌렸고 레이피스가 결국 명령을 내렸다.
“그래, 지금은 보류해.”
포드는 뽈뽈뽈 물러났다. 엔리카가 낸 문제에 레이피스가 추측할 시간이 늘어났다. 엔리카는 맞춰보라는 듯 한 발짝 물러났다. 레이피스는 다가가서 더듬어보았다. 벽이 만져졌다. 레이피스는 입을 살짝 들췄다. 재질은 콘크리트, 그리고 상당히 부식되었다. 건물이다. 하지막 아주 작다. 요르하에서 지도에 딱히 표시하지 않을 정도로 외지기에 군사적인 가치는 없겠지만......
레이피스가 고민하는 동안 엔리카는 근처를 한바퀴 돌았다가 사라졌다.
“엔리카?”
늦게 알아차린 레이피스가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엔리카? 어디있어요, 엔리카?”
불안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가 한번 다시 크게 외치려는 순간 참지 못 하고 키득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레이피스는 민감하게 청각 센서를 집중하였다. 한번 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여기군요.”
레이피스는 벽을 똑똑똑 두드렸다. 뒤의 공간이 비어있는 듯 울렸다. 그러자 벽 너머에서 엔리카의 응답이 들려왔다.
“네, 맞아요. 들어오세요.”
손님을 맞이하는 듯한 대답이었다. 레이피스는 손님답게 뒷짐을 지고 힐끔 살폈다.
“입구는 어디인가요?”
“뒤로 돌아오면 있어요.”
엔리카의 말대로 구조물을 빙 둘러 가보았으나 보이는 것 무성한 잎사귀 뿐이었다. 다시 방향을 잃은 레이피스의 등에 톡톡 두드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작은 틈새에서 검은 장갑을 낀 손이 사라졌다가, 바이저를 착용한 얼굴이 나타났다.
“이쪽이에요, 레이피스.”
찬찬히 보니 비좁은 틈이 있었다. 덩굴을 걷어내어 크기를 가늠해보니 안드로이드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였다. 엔리카는 그 틈 속으로 사라졌고 레이피스도 이윽고 따라들어갔다. S형인 엔리카는 가볍게 넘나드는 것 같지만 크기가 비교적 큰 B형 레이피스는 드나들기가 약간 벅찼다. 팔을 먼저 통과시킨 레이피스를 엔리카가 붙잡아서 끌어 당겼다. 확 빠져나오는 바람에 둘이 살짝 부딪혔고 균형을 살짝 잃어 반사적으로 서로를 붙잡았다. 잠시 서로에게 착 달라 붙은 꼴이 되었다. 아무도 넘어지지 않았고 레이피스와 엔리카는 안았다가 웃으며 놓아주었다. 그리고 레이피스는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맞아요.”
엔리카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중앙에 섰다. 공간은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딱 한낮의 응달 정도였다. 천장에 간간히 뚫려 있었고 그 위를 덩굴이 뒤덮어 잎에 투과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튀어나온 철골에는 늘어지는 식물이 걸려 있었고 선반 역할을 할 수 있는 벽의 넓직한 금에는는 조개 껍데기, 매끄러운 돌맹이가 놓여있었다. 바닥에 나뒹굴었을 잡동사니는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구멍 근처에 크게 홈이 생긴 곳에는 흙을 담아 꽃이 심겨져 있었다. 꾸준히 들렀던 곳일까? 아끼고 가꾸어 꾸민 곳일까? 누군가의 손길이 더해져 정감이 가는 공간이었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을 환영해요. 편히 앉아요.”
엔리카는 집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말했다. 레이피스는 휘 둘러보고 답했다.
“앉을 곳이 없는데요. 어디에 앉을까요?”
“그쪽에 매트리스가 있지요? 그곳에 앉으면 돼요.”
과연 매트리스가 있었다.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기는 했지만. 레이피스가 앉자 엔리카는 마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라고 해봐야 상자였다.
“이곳은 어디인가요?”
“내 아지트에요.”
엔리카가 장난스럽게 미소지으며 레이피스에게 말했다. 레이피스는 흐음 소리를 내며 다시한번 공간을 둘러보았다. 군인인 그들에게 아지트는 군사 용어로 익숙했지만 군시설과는 아무리 봐도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어린아이들의 낭만이 깃든 비밀공간에 가까웠다. 약간은 유치하게 여겨질 수 있었지만 레이피스는 기꺼이 어울렸다.
“멋진 곳이네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에요.”
“정말요?”
“그럼요.”
엔리카는 무릎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몇 계절동안 이곳을 만들었어요.
공간을 보는 엔리카의 눈은 감상에 젖어있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엔리카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레이피스는 엔리카가 가꾸며 들였을 노력을 생각해보았다. 가끔 강가에서 예쁜 돌을 줍던 순간과 식물에게서 씨앗을 받을 모습이 떠올랐다. 주기적으로 들러서 청소를 했을 엔리카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에게 특별히 소개시켜줬고요.”
둘의 눈이 마주쳤다. 엔리카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요.”
레이피스는 푸스스 웃었다. 엔리카가 짐짓 진지한 눈으로 강조했다.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돼요. 알겠죠?”
“알았어요, 엔리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정말이죠?”
엔리카는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레이피스는 잠시 멀뚱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엔리카는 이런, 모르는군요. 하더니 레이피스의 손을 가져와서 검지 중지 약지를 접어주었다.
“이건 옛날 인간들이 쓰던 표시인데요.”
그리고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엮고 엄지끼리 꾹 눌렀다. 일련의 행위는 의식 같기도 했고 맹세의 경례같았으나 좀 더 간질간질하고 부드러웠다.
“이렇게 하면 서로의 약속을 나누었고, 함부로 어기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레이피스는 손을 붙인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엔리카. 약속했고 우리 둘만의 비밀로 남겨둘게요.”
엔리카는 만족하며 싱긋 웃었다. 레이피스는 엔리카의 아지트와 엔리카가 알려준 약속의 기호를 되새겼다. 최근의 엔리카는 레이피스에게 하나 둘 터놓고 있었다. 사소하나, 그 전의 엔리카는 감추었던 것이었다. 이런 작은 순간들이 그들에게 행복을 안겨주었다.
둘은 약속의 손가락을 걸고 미소를 나누었다. 잎에 비치는 햇살같이, 살랑이는 바람같이 아름다운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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