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만 버전입니다. 합작쓰다가 방향이 틀어져서 이 분량을 버리게 되었는데 그래도 완성은 못 하겠네요. 제가 건너뛰는 부분은 상상력으로 채워넣으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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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시처럼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정의를 내리는 것은 다르다. 섣부른 정의는 지능의 다양한 기능 중 일부를 배제시킬 수 있다. 따라서 지능은, 지성체가 출현한 시점,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고 긴 역사에 걸쳐 인지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영역이었다. 몇몇 학자들이 나름대로 지능에 대해 연구하고 정의를 내리기는 했지만 아직 통합되는 결론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
어느 정도의 지능을 기준으로 지성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몬스터들도 최소한의 지능은 가지고 있다. 사냥감을 인지하고, 공격하고, 상대가 강하다 싶으면 도망간다. 동족을 알아보고 무리를 짓는다. 이런 일련의 행위 또한 지능의 영역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몬스터를 지성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직접 무기를 섞는 모험가서부터 일반 민간인까지 의견은 동일했다. 지성체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명료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몬스터의 그것보다는 높을 거라 여겼다.
통상적으로 몬스터의 지능이 낮은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냥 틀린 의견은 아니었다. 대개의 몬스터들은 인간, 요정, 하플링 등과 같은 지성체로 보다는 지능이 낮은 것이 사실이기는 하니 말이다. 또한 그런 인격체가 특정 요인에 의해 몬스터가 되었을 때(메이플 월드에서는 전례가 많은 일이었다) 지능이 낮아지는 현상이 여럿 목격되었다. 공격성이 짙어지고, 본능에 의거하여 행동하는 듯 하며, 알던 대상을 판별하지 못하며, 특정행동을 이유 없이 반복한다. 그건 고지능의 결과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동일 개체가 몬스터로 변하는 과정에서 지능이 하락한다는 결론과 몬스터가 인격체에 비해 일반적으로 지능이 낮다는 의견이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정확한 것은 아니다. 간혹 말을 하는 몬스터도 있었다. 말은 지능을 판가름할 수 있는 눈에 띄는 기준이다. 말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때로는 사고도 할 수 있는 몬스터가 나오고는 했다. 그런 특이개체가 나올 경우 학계에서의 정리는 훨씬 복잡했지만 모험가들의 입장은 훨씬 단순했다. 누군가는 예외로 분류했다. ‘몬스터가 아니다, 혹은 몬스터일지라도 이것은 다르다.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는 동일하게 취급했다. ‘말을 할 줄 안다한들 그뿐이다. 이것은 앞서 사냥한 수많은 것과 똑같은 몬스터이다.’
그러나 이런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은 그 말하는 몬스터의 행동이 ‘적대적이지 않을 경우’에만 한정되었다. 지능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을 공격한다면 우호적이던 입장도 돌아서고 한순간에 똑같은 몬스터로 취급해버리고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몬스터를 분간하는 기준이 지능의 유무가 아니었으니.......”
위의 내용은 미야케 요이치로의 저서 ‘인공지능을 만드는 법’의 내용을 일부 참고하였습니다.
“언니!”
명료한 음성이 들렸다. 라리안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높은 곳에 얽혀있는 나뭇가지에 누군가가 걸터앉아 있었다. 사람이다. 사람이 입에 손을 둥굴게 말고 재차 말했다. 좀비가 들끓는 어두운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꽤 생기 있는 목소리였다.
“이 사단이 터진 와중에도 용케도 무사했네?”
맑은 피가 돌고 있을, 사람이었다. 라리안이 떠오르려는 미소를 꾹 눌렀다. 시체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산 자였다. 라리안은 목표를 바꾸기로 했다. 무리지은 자들 보다는 홀로 나와 있는 쪽이 사냥하기 쉽다.
(흐름 캐니안은 라리안이 좀비인거 모름 -> 공격으로 알게 됨)
(정보 자체가 적음)
or
ahems 걸 알고 있음
“깔깔깔, 꼴이 그게 뭐야? 얼굴에 피 다 묻었거든? 좀 씻고 와.”
라리안은 담담한 표정 아래 긴장을 세웠다. 얼굴에 피가 묻었다? 아까의 시체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던 것이 없어 전혀 알지 못 했다. 라리안은 태연하게 소매로 입가를 쓸었다.
“내려와. 여기서 이렇게 말하는 건 위험해.”
“위험해? 뭐가?”
캐니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좀비가 소음에 반응한다는 것을 모르나? 그러고 보니 좀비와 응전했다고 보기에는 옷차림이 단정했다. 라리안이 찬찬히 생각을 이어나가는 사이 캐니안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한테 오라가라하지 말고 언니가 올라와.”
//여기 안 썼어요.
“그런데 언니, 좀 짜증나네? 내 사정은 안 물어봐?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는지. 라티에는 괜찮은지.”
라리안은 불쾌함을 무기질적인 표정 아래 감추었다. 그까짓 것이 뭐가 중요하지? 중요한 건 자신 앞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그러나 대상을 속여 넘기려면 자신은 아직 살아있는 채 해야했다. 저 캐니안이라는 사람의 언니인 척 행세해야했다. 아직, 라리안인 양 행동해야했다.
“관심없어.”
그녀가 어떻게 행동했더라? 원래 모든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걸로 기억했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다. 캐니안은 앉아서 달랑거리던 다리를 멈췄다.
“그래?”
그리고 일어나 반대편으로 훅 뛰어내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껏 라리안이 반쯤 나무를 오른 시점에서. 라리안은 망연히 보고만 있었다. 기껏 오라고 해놓고 가버리는 건 무슨 행동거지인가? 어이없는 일이었다.
*
“어이가 없네. 저게 사람이야?”
캐니안은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가지에 안착해서 몇 걸음 걷다가 또 뛰어내렸다. 암벽 등반에 가까운 코스를 다시 올라가야 할 것을 생각하면 별로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관심없어’라니, 캐니안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여기까지 날아오기 위해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 알아? 비행기를 빼돌려서 대양을 건넜다고. 중간에 연합에게 들켜서 밤새도록 추격전도 벌였어. 아-주 스릴이 넘쳤지. 그 고생을 하고 사람이 구하러 와줬으면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줘야 하는 거 아니야?”
투덜거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바닥에 이르러 있었다. 캐니안은 나무기둥을 발로 찼다. 나무는 꿈쩍도 안했다.
“내가 저 자식을 언니라고 구해야해? 그냥 여기서 눌러 살게 내버려둘까?”
그때 무언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뒤이어 폭발음이 울렸다. 캐니안은 흠칫 놀라며 돌아보았다. 낯익은 소음이었다. 비행기가 폭발할 때 그런 소리가 났었다. 그리고 이 빽빽한 숲에 있을 만한 비행기는 하나밖에 없었다. 자신의 것. 캐니안은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캐니안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을리 없었다. 세달 동안 이곳에서 살아남았다고 보기에는 좀비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가만히 몸을 사리고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라리안의 뇌속에 저장된 캐니안의 정보에 의하면 캐니안은 그렇게 가만히 있을 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태 발생 이후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유입되었다고 보아야했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가능하게 만들어준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주변을 잠깐 돌아보자 그 수단을 찾을 수 있었다. 나뭇가지로 대충 가려진 경비행기.
엘레니아의 나무들은 크고 거대했으며 서로의 가지가 얽히고 설켜 공중에도 여러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그런 공간 중 하나에 경비행기 하나가 나무 위에 아슬아슬하게 얹혀있었다. 라리안은 유심히 살펴보았다. 주변의 잔가지들은 참혹하게 꺾여있었다. 비행기가 거칠게 들어오며 뭉개놓았을 것이다.
바닥이 단단한 곳이 아니었다. 착륙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넓지도 않은 곳이었다. 불시착으로 보였다. 잎들로 잘 가려두어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지나칠 뻔했다. 라리안은 캐니안이 경비행기를 조종한 줄 안다는 것을 떠올려냈다. 이 경비행기로 바다를 건너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진입했을 것이다. 그 말은, 현재로서 빅토리아 아일랜드를 드나들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라리안은 비행기를 추락시켰다. 애초에 위태롭게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살짝 밀었고, 서서히 기울어지다가 소리없이 떨어져 바닥에 충돌하며 끔찍한 파열음을 냈다. 날개가 부러져 튕겨나갔고 조종석이 뭉개졌다. 엔진에서는 불길한 낌새로 연기가 스물스물 새어나왔다. 저 정도면 수리도 못 한다. 라리안은 담담히 내려보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캐니안이나 자신이나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갇힌 꼴이 되었다. 라리안은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
*
라리안에게는 선이 있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놓은 선이었다. 네가 가족이니까 여기까지는 용서해주겠다는 암묵적인 합의의 선. 입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캐니안은 대체로 그 선을 지켰다. 책장을 엎어 책이 쏟아지게 만들어 라리안이 골머리를 앓았어도 라리안의 가장 중요한 것만은 망가뜨리지 않는 식이었다. 사실, 선을 엄밀히 지켰다기 보다는 선의 경계에서 발을 들였다가 뺐다가 하면서 라리안을 살살 자극했지만, 뭐 어떠랴? 조금 철이 든 이후에는 장난 대신 시비를 걸었다. 행동보다는 언어적인 측면에서 라리안의 선이 훨씬 관대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 정도로 언니를 위할 줄 아는 착한 동생이었다. 아, 물론 이건 전적으로 캐니안의 의견이었다.
캐니안에게도 선이 있었다. 라리안과는 방향이 다른 선이었다. 마찬가지로 캐니안을 중심으로 둥글게 그었지만 캐니안 자신이 밖으로 밀려나가게 놔두어서는 안 되는 선. 내가 언니의 가족이지만 날 가족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경고의 선. 그 선은 가족 간의 거리를 의미했다. 가족끼리는 어느 정도 챙기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라리안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걱정해주거나 따스한 위로 한번 건넨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그게 서러워서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생긴 선이었다. 그러니까, 라리안이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갈 때 까지 캐니안을 방치한다면, 캐니안 또한 라리안의 선을 넘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땐 결코 시시한 장난 따위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라리안은 캐니안에게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했으며 캐니안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하러 왔다. 선이 있었으니까. 가족이니까.
캐니안을 가족으로 생각했기에 선을 지킨건지, 선이 있기 때문에 가족 행세를 해준 건지, 그건 지금 중요한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언니가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전투가 밴 몸은 사고를 거치지 않고도 자동으로 움직였다. 좀비 한 마리를 발로 후려차서 넘어뜨리고, 다른 좀비에게 총을 갈겼으며, 그 반동을 그대로 이용해서 뒤로 튕겨 공격을 피했고, 무거운 무기가 달린 팔을 휘둘러 좀비의 턱을 아작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공황상태였다. 어떻게, 언니가, 나에게? 자신을 좀비 무리에 두고 홀로 떠났다. 라리안이 홀로 몸을 피한 정도가 아니었다. 자신을 아예 좀비 무리에 던져놓았다! 뒤에서 달려드는 놈의 이마에 구멍을 내었다. 끝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것이었다. 캐니안은 언니를 찾아보려 애썼다. 좀비가 시야를 가려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우연히 위를 쳐다보게 되었다. 나무 위에 서있는 라리안과 눈이 마주쳤다. 라리안은 그저 자신을 냉담하게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언니!”
캐니안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한 대 얻어맞고 비틀거린 직후였다. 라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캐니안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았다.
캐니안은 팔을 아래로 내렸다. 고개마저 푹 꺾였다. 라리안은 눈을 찌뿌렸다. 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좀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좀비를 끌어들인 것은 힘을 빼놓기 위해서였다. 사냥감을 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라리안은 뛰어내릴 준비를 하였다. 그때 캐니안이 고개를 들어 라리안을 노려보았다. 라리안은 순간 멈칫했다. 그토록 캐니안이 그토록 적의어린 시선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캐니안은 팔을 거칠게 흔들었다. 소매 속에 감추어둔 시약이 떨어지며 손에 잡혔다. 좀비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캐니안은 바닥에 시약병을 세게 던졌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녹색 연기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연기는 작은 시약병에서 나온 것 치곤 제법 크게 일었다. 캐니안을 연기 속에 묻어버리고 좀비와의 전투 지역을 모조리 가렸다. 그러고 나서도 퍼져 라리안이 있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라리안은 껄끄러운 느낌이 들어 물러났다.
뒤이어 연기 속에서 목을 긁는 괴성이 들렸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의 것이었다. 라리안은 연기가 걷히는 대로 전투지역에 접근했다. 좀비들이 눈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대부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몇몇은 몸이 경련하다가 서서히 동작을 멈추었다. 마침내 침묵이 그곳을 감돌았다. 캐니안은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연기에 몸을 숨겨 달아났을 것이다.
“제길.....”
라리안은 짓씹듯 내뱉었다. 캐니안이 연금술사라는 정보는 있었지만 설마 이런 것이 가능할 줄은 몰랐다. 단 한명이였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 없었다. 산 사람은 그만큼이나 매혹적인 존재였다. 라리안은 숲을 돌아보았다. 멀리가지 못 했을 것이다.
*
캐니안은 먼곳에 있지 않았다. 라리안의 위치에서 고작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나 엘리니아는 단 몇 백미터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나무가 빼곡했다. 도망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다. 캐니안은 간신히 나뭇가지 위에 올라타서 나무 기둥을 부여잡고 숨을 골랐다. 호흡이고 몸 상태고 머릿속이고 죄다 날뛰고 있어서 캐니안은 미칠 것 같았다. 캐니안 또한 시약의 범위 내에 있었다. 물론 같이 죽을 생각으로 시약을 깬 것은 아니다. 자신은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빠르게 마스크를 착용했었다. 그렇지만 조금은 들이마셨을 것이다. 캐니안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보라색 해독제를 꺼내어 들이켰다. 눈이 빠질 것 같았고 목을 긁어내리는 감각이 남아 있었지만...... 얼추 괜찮아졌다.
몸이 괜찮아지자 또 머리가 복잡해졌다. 언니가 어째서, 나를? 그 의문만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들에게는 선이 있었다. 넘어가서는 안 될 선이었지만 오히려 넘어가지 않도록 서로를 붙잡아준 견고한 선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보란 듯이 선을 넘었다. 무엇이 언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먼저 선을 넘어갔던가? 언니를 분노하게 만들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던가? 아니면 그간 쳤던 사소한 시비를 언니가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을까? 이내 자신을 죽이려들만큼?
아니, 언니가 그럴 리가 없었다. 라리안은 본성이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타인의 행동을 감정적으로 담아두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자신이 여태껏 까불어 오지 않았던가? 또 저래보여도 언니는 나름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무심하기에 오히려 도덕을 지키는데 필사적인 이유를 필요하지 않았다. 캐니안이 보기에, 이유가 없기에 라리안의 도덕의식은 얄팍했고 언제든지 뒤집어 질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무심하기에 어떤 이유도 도덕의식을 뒤집을만큼 강렬하게 영향을 끼치지 못 했다. 어이없는 모순이었지만 실로 그랬다. 그래서 언니는 변하지 않고 굳건해보였다. 강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녀와 상관없어서. 그녀의 세계에 자국을 남기지 못 하기 때문에.
그런데 변했단 말이지. 가족이고 단 하나뿐인 동생인 자신을 좀비 무리에 버렸다. 지켜보면서 웃기까지 했다. 가족이 아닌 민간인이래도 그렇게는 하지 않았을 텐데. 그전에 라리안이 그렇게 쉽게 웃음을 보일 리가 없는데.
라리안이 아니다. 캐니안은 확신했다. 근거가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감이었다. 20여년을 지켜본 동생으로서의 감. 캐니안은 얼굴을 두 손 안에 파묻고 차근차근 생각을 이어나갔다. 추측들이 산발적으로 떠올랐다. 좀비가 언니를 공격하지 않았다. 언니의 행위는 눈 뒤집혀 달려드는 좀비들의 행위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라리안 본인이 인지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다리 어디에 이상이 생긴 듯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마치 흐느적거리며 걷는 시체들처럼. 입가에 피가 묻어있었다. 식인의 흔적처럼.
아, 라리안. 좀비가 되었구나.
캐니안은 생각은 얼추 정리했다. 원인을 규명하고 사실을 알아낸 것이 아니었다. 입장을 정한 것이었다. 저게 좀비라면 더 볼 것도 없다. 죽여야지.
캐니안은 팔목에 무기를 제대로 채우고 나무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숲 사이로 뛰어나갔다.
라리안은 공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스크를 발견했다. 눈과 코, 입을 전부 막는 형식이 었다. 마스크라기보다는 방독면에 가까웠다. 시제품이 아니다. 직접 만든 것이다. 직접 본적은 없지만 캐니안의 물건일 것이다. 라리안은 싱긋 웃었다. 아마 이쪽 방향으로 도망치다가 흘린 것이겠지. 속임수일 가능성을 잠시 떠올렸다가 접어두었다. 그럴 수작을 부릴 겨를은 없었을 것이다.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면 공터를 우회해야했다. 라리안 또한 같은 생각으로 공터 주변을 살피고 있었으니 캐니안이 그랬다면 분명 마주쳤을 것이다. 라리안은 머릿속에서 근방의 지리를 펼쳐두고 선을 그었다. 공터에서 출발하여 마스크가 있는 곳을 통과하여 숲으로 쭉 뻗어나가는 선. 약간 선이 틀어졌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었다. 그쪽 방향으로 가면 나오는 건 딱 하나였다. 여섯 갈래 길.
여섯 갈래 길은 탁 트여있었다. 발견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여섯 갈래 길에서 놓치면 끝이었다. 그곳에서 끝을 봐야했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방관하고 있었다.
저게 언니였어도 나를 건드렸으면 용서할 수 없다. 저게 언니였고 좀비라면 그
//
여기에 자매간의 진솔한(?) 대화를 넣자. 그리고 슬슬 전투로 넘어가기. 무기좀 부딪혔다가 말해도 좋고.
//
캐니안은 라리안의 몸을 짓밟고 총구를 겨누었다.
“네가, 네까짓게 언니의 몸을 하고 있다고 해서 죽이지 못 할 줄 알았어? 하, 그렇다면 잘못보았어. 나는 네가 언니였어도......”
기묘한 감각에 캐니안은 말을 멈췄다. 발끝에서 전해지는 규칙적인 박동이 전해졌다. 쾅쾅쾅.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순간 캐니안은 손끝에서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맙소사. 심장이 뛰고 있어. 시체가 아니야. 정해놓았던 입장이 흔들렸다.
“언니... 살아있어?”
라리안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캐니안의 발을 밀어내고, 균형을 잃은 캐니안의 품에 파고들었을 뿐이다. 통증이 느껴졌다. 캐니안은 숨을 들이켰다.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그러나 노련한 전투 솜씨로 오히려 라리안의 머리를 끌어당겨 붙잡아 고정시키고, 총을 쏘았다. 총의 반동과 충격이 한꺼번에 전해져왔다. 자신의 어깨에 라리안의 머리를 붙인 탓에 표정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심장박동이 멎는 것이 ㅈㄱ헤ㅏ ㅈ;;어가는 것도.
*
언니 그때 기억해? 내가, 언니가 다 같이 레지스탕스였을때 말이야. 블랙윙에 맞서던 그때말이야. 내가 만약 블랙윙이면 어쩔거냐고 물었던거 기억해? 기억 안 나? 그때 언니가 뭐라고 했냐면 체포해서 레지스탕스 본부에 넘긴다고 했어. 하여튼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주는 법을 몰라. 그래, 그때 겉으로는 웃었지. 근데 기분이 꽤 상해있었거든? 동생이 그런 짓을 벌였을때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라리안 이 자식아. 나보다 레지스탕스가 더 중요해? 그래서 나는, 언니가 배신한다면 언니를 죽일거라고 했어. 너무 많은걸 알고 있어서 정보가 더 넘어가기 전에 죽이는게 최선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냥 서운해서 짜증 좀 낸거였거든? 진짜로 죽일 생각 같은게 없었어. 언니라면. 언니, 언니.....라리안......
기어코 나를 죽이고 말았구나.
캐니안은 혼란스러웠다. 가끔 전투에 정신없이 임하다 보면 너무 나갔다 싶었을 때가 있었다. 절명한 시체를 두고 뒤늦게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망연한 생각이 떠오를 때. 지금이 딱 그때였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 했는데 언니를 쏘았다. 언니를 적으로 둘지, 몬스터로 둘지, 배신자로 둘지, 아니면 그냥 환자로 둘지...... 아니면 그냥 언니로 둘지 정하지 못 했는데 진짜로 죽여 버렸다. 전투에 취했었다. 취하지 말라고 충고해준것도 라리안이었던가?
라리안의 몸이 캐니안 위로 그대로 허물어졌다. 캐니안의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라리안을 툭 건드렸다. 붙잡아주지 않자 시신은 땅으로 흘러내렸다. 블래스터의 총격은 파괴력이 크다. 직격으로 머리에 맞은 탓에 시신은 꽤 처참했다. 아-, 아아-. 캐니안은 불분명한 소리를 내뱉었다, 후회였다. 고개를 푹 꺾으며 머리를 헤집었다. 피가 제게 사방으로 튄 탓에 손에는 피가 묻어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칠게 머리를 헤집다가 점점 내려와 바짝 세운 손톱으로 얼굴을 긁어내렸다. 그리고 손이 더 내려가 목가의 상처를 짓이겼다. 캐니안이 라리안을 죽일 때 라리안이 캐니안을 물었다. 그때 생긴 상처였다.
진짜 언니라면 나한테 그리 쉽게 당하지 않았을 텐데 왜 눈이 뒤집혀서는. 이게 다 언니 때문이야. 서점에서 라티에나 돌봐주고 있을 것이지 왜 하필 그 시기에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건너가서, 왜 멀쩡히 처신 못 하고 감염되어서, 어쩌다 나랑 마주쳐서, 그리고 왜 하필 마지막에 살아 있는 사람처럼 심장이 뛰어서......
제기랄, 지랄 맞을-, 제대로 채 되먹지 못 한 단어와 생각이 방향없이 이리저리 튀었다. 어처구니없고, 환멸나고, 짜증나고, 혼란스럽고, 또 무척 슬퍼서, 캐니안은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는 항상 이랬다. 자기 자신은 항상 무덤덤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럴 줄 알지? 이런 무심한 언니를 두고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흐느낌대신 욕이 튀어나왔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언니를 두게 된거야? 언니는 어쩌자고 이렇게 가버린 거고.
캐니안은 라리안 위에 엎어졌다. 소리를 내지르며 울었다.
저 멀리, 나무 너머에서 좀비의 괴성이 들렸다. 빛이 사라진 땅, 좀비로 뒤덮인 빅토리아 아일랜드. 그곳에서는 꽤 흔한 일 중 하나였다.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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