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동 마법이라는 것이 막 간단하게 손을 딱 튕기면 되는 그런 단순한 게 아니야. 엄청난 고도의 기술이라고! 물론 마법 중급 연산 과목에서 다루기는 하지. 너희 나름 이해도 했다고 생각하겠지. 대상 공간 격리, 이동 공간 파악, 위치 안전 확보, 이동, 격리 해제, 끝. 대충 이렇게 배웠겠지? 근데 그게 다가 아니라고.
이동 부분을 보자. 좌표를 받아서 해당 좌표로 이동하지? 그런데 그 좌표라는게 어디서 나오냐, 이거 너희들 알아? 세상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공간마다 숫자 매겨졌다고 멍청하게 생각한건 아니겠지? 세상은 그저 존재하는거야. 그리고 좌표는 사람이 임의로 구역을 나눠서 배분한 것이고. 시에란 들판은 그냥 들판인데 인헨 왕국과 유피룬 왕국이 구경선 이리저리 나누듯이 말이야. 어이구, 귀찮게 두 왕국이 주고받고 하는 바람에 우리 집이 여름에 가면 인헨 왕국에 들어있고 겨울에 가면 유피룬 왕국에 들어있고 그런다.
마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옛날에는 좌표가 없었어. 그거 나름 최신 기술이라고. 물론 그것을 포함한 각종 여러 가지 연산도 없었지. 지금 너희들이 알면 기겁을 하더라. 연산 없는 마법이라니. 자칫하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하면서 말이야. 맞지. 그때 그러면서 많이 왕왕 죽었고. 그런데 어쩌겠어. 그때는 마법을 분석할 수준이 안되었거든. 그냥 여러 시도에 의해서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 이런 정도였지. 스승이 경험을 쌓고 모아서 제자에게 전달하고 그러는게 고작이었지.
어쨌든, 그때도 순간이동 마법은 있었어. 물론 좌표가 없다 보니까 좀 허술했지만 아무튼 시전하는 마법사들이 있었어. 눈 깜짝할 사이에 궁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고 하는 대현자 이르난이나 신출귀몰한 유령 페히킨이나 다 그때나 신기한 술수였지 지금 생각하면 고작 순간이동이다. 어쨌든 그때의 마법은 원점을 자기 자신으로 두고 이동해야 할 장소를 자신 주위로 지정해서 이동했겠지. 물론 세밀한 계산은 못 하고 지팡이로 가리켜 일적선에 해당하는 곳, 아니면 눈에 보이는 장소, 뒤로 열 발자국, 이런 정도였어. 그 정도는 가능했지. 원점을 자기 자신으로 두니까 이동할 곳의 위치를 가늠하기도 쉬웠고. 다만 멀리 못 간다는 단점은 설명 안 해도 알아듣겠지?
그리고 마법이 개인의 눈속임 영역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시점이 대제국 피르칸나인건 알지? 이때 순간이동 마법이 대대적으로 쓰이게 되었어. 이때도 좌표는 탄생하려면 아직 먼 시점이었지. 그럼 어떻게 했느냐, 피르칸나는 주요 지점에 마법 거점을 세웠어. 피르칸나가 탄생했던 서녘의 산맥서부터 나아가 동쪽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대제국은 거의 온 대륙을 점령했고 점령하는 즉시 마법 거점을 세웠지. 그게 130여개에 달했다니. 무지막지한 대제국이어서 가능했지. 돈이며 인력이며, 말이야. 지금 마법사들이 전부 손을 잡아도 그렇게 세울 수 있을련지 몰라.
마법 거점이라는게 순간이동 가능지점이야. 순간이동을 위한 설비를 전부 갖추어 놓고 해당 거점에서 다른 거점으로 이동할 수 있게 했지. 위치가 마법 거점이 세워진 곳으로 명확하니 계산은 필요 없고, 거점마다 마법사들이 들러붙어 있었으니 오히려 사고는 거의 없었대.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그 당시에는 마법 거점 이외의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대. 마법 거점이 마법 장을 펼치고 마법의 흐름을 끌어당기거든? 그래서 마법거점의 생기면 근방의 민간 마법사들의 순간이동은 전부 실패하게 되었다는데, 그래서 아예 불가능하는 인식이 펼쳐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지. 그냥 황제가 마법에 대해 제대로 몰라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의견도 있고, 아니면 알고 제국 소속 외의 마법사들을 전부 말살시키기 위해 그랬다는 의견도 있고. 그래도 그때 제국 소속 마법사들은 대우가 참 좋았다던데 아쉽네. 내가 그때 태어났으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 마법 거점들은 피르칸나 제국이 멸망하면서 대다수 붕괴되었어. 제국의 멸망 원인은 마법사와는 관련이 없으니까 넘어가고, 새로 제국을 침략해서 영토를 먹은 국가들이 제국의 군사가 그 거점으로 갑자기 순간이동 해 올 줄 알고 때려 부쉈거든. 웃기는 일이지. 고작 한두 사람만이 이동 가능한데 어떻게 군사를 보내? 여하튼 안 부수고 남아있는 것도 마법의 흐름을 꼬아놓는 일 때문에 나중에 마법사들이 시설 작업을 벌였어. 주요 시설만 해제하고 건물은 그대로 두어서 유적으로 가끔가다 볼 수 있다더라. 나중에 한번 심심하면 보러가봐.
그 다음에 제국이 사라지면서 주변에서 전부 땅 차지하겠다고 나서서 대혼란이 일어났거든. 그러는 바람에 한동안 마법의 발전은 중단되었지. 창병기가 득세하는데 어디서 마법을 지원할 수 있겠냐? 아, 그때 공격 마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는 했다. 근데 순간이동은 아니야. 그건 주술 수준을 못 벗어났어. 말했지? 그건 좌표가 필요하다고.”
2019.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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